’12월 7일(월) 14시에는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안전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주제로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활동하는 많은 단체들이 모인 가운데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1부 ‘사례를 통해 살펴 본 작은사업장 안전보건의 현주소’와 2부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제안’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은사업장일수록 위험하다”
‘전자산업 작은사업장의 유해환경’토론문을 발표한‘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이상수 상임활동가는 “작은사업장일수록 기판을 세척하기 위해 사용하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처럼 생식독성을 유발하는 유해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한다”면서 이 같은 독성물질을 “차폐되지 않은 채, 보호장구도 없이 사용”하면서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검진 같은 안전보건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작은사업장의 유해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독성물질(CMR) 사용을 금지하거나 대체물질 사용을 촉진하는 등의 노력을 이미 기울이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사례도 언급했습니다.
‘작은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 단상’이라는 주제로 토론자로 나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류현철 소장은 ‘SK하이닉스 사외협력업체 지원사업’ 사례를 통해 (원청)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를 주된 화두로 제기했습니다. “위험은 상존하지만 관리 책임은 공백”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작은사업장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위험관리 책임과 비용 마련은 어떤 식으로 실현 가능한지도 짚어보았습니다. 가령 ‘환경개선부담금’ 등의 형태로 원청 기업에 비용을 부과해서 정부, 지자체가 작은사업장의 위험관리에 소요되는 시설, 장비, 인력에 투자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부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제안’은 △안전보건 정책과 제도개선 과제 △건강권 쟁취를 위한 작은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라는 두 가지 의제를 중심에 놓고 발제와 플로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구제적인 법제도 개선과 인프라 확충으로 나아가야”
첫 번째 발제는‘작은사업장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과제 – 기초산업보건체계를 수립하라’는 제목으로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활동가가 맡았습니다. 최민 활동가는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재해율이 높은 현실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중 안전보건관리체계 및 안전보건관리규정, 안전보건교육, 안전보건진단 등 산업안전보건을 위한 기초체계 전반에서 보호 범위의 밖에 놓여 있는 ‘제도적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산재 예방을 위한 자원 부족, 공적 산업보건서비스 제공 인프라 부족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작은 사업장을 위한 기초 산업안전보건서비스 제공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최민 활동가는 “먼저 기초산업안전보건서비스 개념이 작동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 상 사업주가 해야 하는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법적 공백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위험성 평가, 구체적인 위험의 등록과 관리,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진단 등 법적 의무 준수, 산재 발생 시 원인 조사 및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 기본적인 안전보건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도록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를 위탁받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공적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최민 활동가는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 역시 확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개별 노동자들의 건강 관리가 아니라 사업장 단위의 산업보건서비스 제공을 중심으로 현재의 근로자건강센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같은 역할 재편이 너무 먼 과제라면 당장은 현재 취합할 수 있는 정보에 기반해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고위험 제조업 소규모사업장부터 안전-보건관리를 해나가자는 것을 ‘단기 과제’로 제안했습니다.
“안전보건의 문맹을 깨야 할 때”
마지막 종합토론에서는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작은사업장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역점을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안전보건의 문맹을 깨야 한다.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을 해석해주는 서비스만 언제까지 되풀이할 건가. 노동자들이 스스로 안전보건을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노조 할 권리’ 슬로건이 잘 보여주듯, 노동자의 생명․건강․인권에 대해서도 그것이 나의 권리의 영역이며 국가가 이를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사업주한테 맡기면 되지, 그걸 왜 국가가 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자. 사업장 자율안전관리 해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업주의 선의에 내맡겨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업주 책임을 강제하는 것 역시 국가의 역할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어떤 것이 실현되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동기가 부여돼야 한다. 현 구조에서는 산재예방을 통한 실익을 누가 거둘 것인가로 수렴되어야 하는데, 즉 동기를 가진 곳에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밖에 없다. 노조 할 권리에서부터 유해화학물질 알 권리, 작업중지권까지 노동조합에게 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부 사회를 맡은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고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노동자를 추모하는 것의 출발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충분치 않은 토론시간이었지만, 각각의 공간에서 그간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해온 분들의 다양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오늘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과 제안된 내용들은 추후에 구체적인 방안들이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후 워크숍이나 토론회를 통해 남은 과제들을 정리하고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자리를 갖도록 하자.”며 4시간 가까이 이어진 워크숍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