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사고 재발을 막을 제대로 된 사고대응이 필요하다.
어제 1월 13일 오후 2시경, LG 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7명이 다쳤다. 배관 교체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이들을 구조하려 들어갔던 사내 응급구조원들이다. 두 분은 심정지 상태로 위독했다가 심폐소생술 끝에 호흡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위독한 상황이다. 극심한 고통 중에 계실 피해노동자들이 부디 잘 회복하시길 빈다.
유출된 물질은 액체 상태의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TMAH, Tetramethylammonium hydroxide)이다.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히고, 피부에 빠르게 흡수되어 신경계 이상을 일으키며, 호흡곤란으로 이어져 피부 접촉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매우 독한 급성중독 물질이다. 이 물질에 피부 일부가 잠시 노출된 것만으로도 사망에 이른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배관 교체 작업 중이던 두 분의 노동자는 쏟아져 내린 이 물질을 온 몸에 뒤집어썼다. 위험작업이었지만 보호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었다.
지난 2015년에도 이 공장에서 질소가스 누출사고로 3명이 죽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밀폐공간인 설비 안에서 장비 유지보수 작업 중 밸브가 열려 질소가 누출된 것이다. 그 때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간단한 산소농도측정 등 밀폐공간 작업의 기본안전수칙만 지켰어도 없었을 죽음이었다.
LG는 화학물질관리법 시행 후 5년간 화학사고 최다발생 기업이기도 하다. 국내만이 아니었다. 지난 해 5월 인도의 LG 폴리머스 공장에서 스티렌 가스가 누출되어 10명이 넘게 죽고, 수천 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LG는 사고 후 무책임한 태도록 국제적 비난을 사기도 했다. LG는 사고를 방치하고 국가는 이런 LG를 방치해왔다.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사고 대응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첫째, 철저한 사고조사가 필요하다.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 300~400리터나 되는 많은 양이 쏟아질 수 있단 말인가? 급성중독 물질의 배관교체 작업이었는데, 물질 차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위험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배관교체 작업에 노동자들이 안전복도 착용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구조하러 들어갔던 응급구조사들이 또다시 피해를 당했다니, 이 부분 또한 확인이 필요하다. 수많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디스플레이 공장의 응급구조작업은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다. LG 디스플레이에 제대로 된 구조지침은 마련되어 있는지, 구조과정에서 이런 지침이 제대로 적용되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둘째, 사고가 다발한 LG 그룹 내 기업들에 대한 안전보건진단이 필요하다. LG는 화학과 디스플레이 등 수많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화학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만 4건의 사고가 있었고, 해외에서도 사고를 내 큰 인명피해를 냈다. 안전보건진단을 통해 사고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대처해야 한다.
셋째,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 지난 번 사고에 이어 이번에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큰 규모의 자동화된 공장에 화학물질을 공급하는 일, 설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 등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들이 이미 외주화되었다. 구의역 김군의 사례에서, 선로보수 중 열차에 치여 숨진 노동자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통이 막히면 위험은 배가된다. 외주화는 소통을 차단한다. 위험한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와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차단한다. 위험이 상호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외주화는 그 자체로 위험을 막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
그런 점에서, 산안법의 유해 작업 도급금지 및 도급승인 조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산안법 시행령에는 급성독성 물질 중 황산, 불산, 질산, 염산 네 가지 물질에 대한 개조, 분해, 해체, 철거 및 해당설비 내 작업에 대해서만 도급승인 대상 작업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보여주듯 급성중독으로 사망을 일으킬 수 있는 화학물질들이 많다. 최소한 사망사고를 일으켰던 물질들에 대해서 만이라도 도급승인 대상 작업을 확대해야 한다.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서는 아예 위험작업 도급을 할 수 없도록 도급을 금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위험물질을 공개하여 알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화학산업, 전자산업에서 수많은 독성화학물질을 다루지만, 우리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비밀은 위험하다. 위험 화학물질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역의 소방과 의료기관 등에는 더욱 자세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산업기술보호법 등 알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섯째, 제대로 된 처벌이 있어야 한다. 세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지난 질소 사고에 대해 LG 디스플레이는 벌금 천만 원을 부과 받았다. 관련 책임자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LG 디스플레이의 냉정한 대차대조표에 올려져있는 사람 목숨값은 3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이러니 LG가 왜 사고발생 대처 비용보다 더 큰 사고방지 비용을 들이겠는가? 반복되는 화학사고에 사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 사고 재발을 부추기는 판결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2021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