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산재 상담을 예약했다고 들었을 때 긴장을 좀 했다. 선천기형 출생이 직업과 관련 있는지 상담을 하러 온다고 했다. 아이랑 함께 온다고 하는 것은 직업병 의사로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때 엄마는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그 시절 그 공정에서 일했던 사람은 벤젠을 포함한 23종의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
2020년 4월 21일, 유미의 아버지 황상기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중략) 딸의 죽음 이후 13년 만에 삼성으로부터 받은 첫 개별 사과 편지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산업안전 관리 소홀 책임자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편지를 받은 이날은 유미의 35번째 생일이었다. 살아 있었다면.